
3화
아이가 게임에 돈을 쓰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얼마냐부터 묻는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 안 묻는다.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월 얼마까지라고 정해두면 아이는 그 안에서 뭘 사는 게 좋은지가 아니라, 얼마까지 되는지만 외운다. 한도가 5천 원이면 5천 원짜리를 찾아온다. 그게 뭐든 상관없이.
그래서 우리 집 규칙은 이렇게 정리됐다.
게임 안에서 쓰는 돈은 아이 용돈에서 나간다. 결제는 그때그때 요청이 있을 때만 건별로 한다. 그리고 허용 여부는 금액이 아니라 내가 납득이 되느냐로 정한다.
다만 게임 본편을 사는 건 예외다. 그건 내가 사준다. 이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게임 안에서 쓰는 돈은 용돈에서
이게 첫 번째 장치다.
부모 카드로 결제하면 아이한테는 그냥 허락받는 일이 된다. 돈이 빠져나간다는 감각이 전혀 없다. 내 지갑에서 나가는 게 아니니까 당연하다.
용돈에서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임 스킨을 사는 순간 문방구에서 뭘 못 사게 된다. 이걸 몸으로 알게 되는 게 중요하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기회비용인데, 설명해서 가르쳐지는 게 아니라 몇 번 겪어봐야 붙는 감각이다.
그리고 부수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자기 돈이 나가면 아이도 신중해진다. 사달라고 조르던 것도 자기 돈이라고 하면 한 번 더 생각한다. 부모가 안 된다고 말릴 일 자체가 줄어든다.
페이투윈(pay to win) 절대금지
여기서부터가 안 되는 목록이다.
돈으로 강해지는 구조는 우리 집에서 금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기는 경험이 가짜가 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아이가 얻어야 할 건 연습해서 늘었다는 감각인데, 결제로 강해지면 그 회로가 통째로 사라진다. 안 되면 사면 된다는 걸 먼저 배운다. 이건 게임 밖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다른 하나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페이투윈 구조는 애초에 끝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결제해서 강해지면 상대도 결제한다. 그러면 다시 밀린다. 이 구조에서는 만족하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도 못 빠져나오는 구조에 초등학생을 넣을 이유가 없다.
확률형 아이템 절대금지
좋은 말로 확률형 아이템이지 사실상 도박이다. 나는 절대 허용 안한다.
게임의 뽑기요소는 도박의 도덕적 허들을 낮추는 장치이기 때문에 그냥 이유불문 어릴때부터 절대악으로 교육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산업을 좀먹는 구조라고도 본다.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 것보다 결제를 유도하는 설계에 인력과 예산이 몰리면 그 산업이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지난 10년이 보여줬다.
이게 계속 굴러가는 건 결국 계속 넣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만 욕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애초에 그 구조 근처에 안 데려간다. 확률을 이해하는 어른도 못 빠져나오는데 초등학생이 판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로블록스에서 결제를 건별로 처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벅스를 한꺼번에 충전해두면 그 안에서 뭘 하는지 안 보인다. 요청이 올 때마다 뭘 사려는지 확인하고 그때 처리한다. 번거롭지만 이 방식이 아니면 뽑기를 걸러낼 방법이 없다.
그럼 뭘 허용하나
편의성과 꾸미기는 된다. 조건이 붙는다.
| 페이투윈 | 안 됨 | 조건 없이 금지 |
| 확률형 아이템(뽑기) | 안 됨 | 조건 없이 금지 |
| 꾸미기(스킨·아바타) | 조건부 | 설명이 납득되면 |
| 편의성(인벤토리 확장 등) | 조건부 | 설명이 납득되면 |
| 게임 본편 구매 | 됨 | 값 치르고 끝나는 구조 |
이 셋의 차이는 명확하다. 스킨은 돈을 내면 그게 온다. 가격이 정해져 있고 결과가 확정돼 있다. 사고 나면 그걸로 끝이고 더 사야 할 이유가 없다. 게임 본편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꾸미기를 허용하는 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로블록스의 아바타는 아이에게 그냥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 또 다른 자기 자신에 가깝다. 친구들이 그 모습으로 아이를 기억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바타 꾸미기를 옷 사주는 것과 같은 종류로 본다. 밖에서 입을 옷은 사주면서 안에서 입을 옷은 안 된다고 할 이유를 못 찾겠다.
프라이빗 서버를 결제해준 이야기
로블록스에는 개인 서버를 유료로 빌려주는 게임들이 있다. 나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이가 먼저 설명해줘서 알았다.
아이 말로는 공개 서버에서 게임을 하면 불법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이 섞여 있고, 양학러도 있다고 했다. 초보자나 어린애만 골라 이겨서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프라이빗 서버를 쓰면 아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서 그런 게 다 막힌다는 게 아이 설명이었다.
(거기에 수상한 어른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막을 수 있다.)
솔직히 놀랐다. 서버라는 게 뭔지, 공개와 비공개가 어떻게 다른지를 9살짜리 초등학생이 자기 말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도 안전을 이유로. 기특하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걸 아이한테 배우는 상황이 좀 웃기기도 했다.
당연히 결제해줬다. 설명이 납득됐기 때문이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그다음 문제였다.
그런데 그 뒤가 더 재밌었다. 그 서버가 아이 학교랑 학원 친구들의 놀이터가 됐다. 마침 브레인롯 훔치기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는데, 다른 집에서는 프라이빗 서버 결제를 잘 안 해줬다고 한다. 부모들이 로블록스를 모르니까 아이가 설명을 시작해도 끝까지 안 듣고 그냥 게임에 돈 쓴다는 얘기로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 서버가 그 동네 아이들의 안식처가 됐다. 본인 말로는 그 유행이 도는 동안 핵인싸였다고 한다.
이 얘기를 꺼내는 건 결제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만약 내가 그때 얼마냐부터 물었으면 그냥 서버 이용료 몇천 원짜리 지출로 끝났을 거다. 왜 필요한지를 물었기 때문에 아이가 아는 걸 다 꺼내놨고, 그래서 나는 아이가 서버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설명을 요구한다는 건 아이를 심사하는 게 아니라 아이 얘기를 끝까지 듣는다는 뜻이다. 다른 집에서 놓친 게 정확히 그 부분이었다.
게임 본편은 내가 사준다
여기가 예외라고 한 부분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게임이 있다고 하면 웬만하면 사준다. 인게임 결제는 용돈에서 나가게 하면서 본편은 내가 사주는 게 앞뒤가 안 맞아 보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이 둘을 다른 종류의 지출로 본다.
패키지 게임을 사는 건 책을 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값을 한 번 치르면 그 안에 있는 걸 전부 쓸 수 있고, 더 내라고 조르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지출까지 용돈에서 빼게 하면 아이는 하고 싶은 게임을 참게 된다. 참아야 할 건 뽑기지 게임 자체가 아니다.
최근에는 메차 카멜레온을 사줬다. 흰 캐릭터에 직접 색을 칠해 배경에 숨는 숨바꼭질 게임인데, 스팀에서 6달러 정도 한다. 일본의 1인 개발자가 두 달 만에 만들어 출시했고 열흘 만에 500만 장이 팔린 게임이다.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산 게임 하나가 몇 주째 아이를 즐겁게 하고 있는 걸 보면, 이게 뽑기에 쓰는 돈보다 훨씬 나은 소비라는 게 눈에 보인다.
다만 여기서 내 불만도 하나 있다. 엔딩을 안 보고 중간에 그만둔 게임이 너무 많다. 사달라고 할 때는 세상 간절했는데 몇 시간 하다가 손을 놓는다. 라이브러리에 그렇게 멈춰 있는 게임이 쌓여 있는 걸 보면 솔직히 속이 상한다.
그래서 요즘은 사주기 전에 한 번씩 묻는다. 저번에 사둔 그건 다 했냐고. 이것도 결국 설명을 받는 방식이다.
금액이 아니라 설명을 받는다
조건부라고 한 부분이 이 글의 핵심이다.
아이가 뭘 사고 싶다고 하면 나는 얼마냐고 묻지 않는다. 왜 그게 갖고 싶은지, 사면 뭐가 달라지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설명이 납득되면 허용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금액 한도를 두면 아이는 예산 안에서 소비하는 법을 배우는데, 사실 그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명을 요구하면 아이는 자기가 왜 그걸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설득해야 한다. 이쪽이 훨씬 오래 남는 훈련이라고 본다.
실제로 해보면 아이가 스스로 걸러내는 경우가 생긴다. 설명하다가 자기도 별로 말이 안 된다 싶으면 그냥 관둔다. 부모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물론 이 방식은 부모가 게임을 알아야 굴러간다. 아이가 뭘 사려는지 이해가 안 되면 납득할지 말지 판단 자체가 안 되니까. 지난 글에서 부모가 직접 해보라고 쓴 것도 이것과 이어진다.
쌀먹(play to earn)은 어떻게 볼 것인가
과금 얘기를 하면 반대편 질문도 따라온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건 어떠냐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쌀먹 자체에는 열려 있는 편이다. 시세를 읽고 타이밍을 잡아 들어갔다 빠지는 건 나름의 사업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어른이 자기 판단으로 하는 거라면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다만 아이 얘기가 되면 결론이 달라진다. 지금 시점에 쌀먹이 굴러가는 게임 중에 아이한테 권할 만한 건전한 게임이 없다. 쌀먹 시장이 형성되는 게임들은 대부분 앞에서 말한 페이투윈과 확률형 구조 위에 서 있다. 아이를 그 안에 넣어놓고 돈 버는 법만 가르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우리 집 기준은 이 정도다. 추후에 아이가 게임으로 비즈니스를 해보겠다고 하면 게임 오픈 초 정도까지는 허용할것 같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 건지 설명해서 그 모델이 납득되면 해봐도 된다. (시간을 갈아 넣는 형태는 절대 불가다.)
여기서도 기준은 똑같다. 금액이 아니라 설명이다.
결론
정리하면 우리 집 과금 규칙은 이렇다. 게임 안에서 쓰는 돈은 아이 용돈에서 나가고, 게임 본편은 내가 사준다. 페이투윈과 뽑기는 조건 없이 금지고, 나머지는 설명이 납득되면 허용한다. (꾸미기는 옷사주기, 패키지는 책사주기 정도라 생각한다.)
얼마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묻는 부모가 많은데, 나는 그게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어떤 구조에 돈을 넣느냐다. 값을 치르면 끝나는 것에는 몇만 원을 써도 되고, 계속 넣게 만드는 것에는 천 원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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